순교자의 영성: 굶주림 속에서도 지킨 신앙과 보속의 삶 (김시우, 교우촌)
한국 천주교 순교자 2만 명 가운데 절반이 처형이 아닌 굶주림으로 숨졌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매를 맞고, 굶어서 죽어가면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12년 전 연풍성지 피정에서 처음으로 제 가슴에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반신불수로 교우촌을 찾아든 김시우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는 조선 전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뿌리째 흔든 대규모 종교 탄압이었습니다. 신유박해란 순조 즉위 이듬해 대왕대비 정순왕후의 명으로 천주교를 박멸하고자 벌인 박해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유배에 처해진 사건입니다. 그 혼란 속에서 반신불수(半身不隨)의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울 출신의 양반 김시우입니다. 반신불수란 몸의 절반이 마비되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조선 시대는 지체부자유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몸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헤맨 끝에 도착한 곳이 경상북도 청송 노래산 교우촌(敎友村)이었습니다. 교우촌이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속 깊은 곳에 형성된 신자들의 은거 공동체로, 숯을 굽거나 옹기를 구워 생계를 이었습니다. 김시우는 그 공동체에서 아무 노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글을 쓸 줄 알았습니다. 온전한 한 손으로 축일표(祝日表)와 기도문을 써서 교우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축일표란 교회력에 따라 성인의 축일과 전례 일정을 정리한 표로, 당시 문자를 읽지 못하는 교우들에게는 신앙생활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무너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공동체를 채운 사람. 솔직히 그 대목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1815년 음력 2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노래산 산록에서 포졸들이 교우촌을 덮쳤습니다. 김시우는 동아줄에 묶인 채 청송에서 경주 감옥까지 200리 가까운 길을 끌려갔습니다. 걷지 못하는 몸이었으니 무릎 아래가 온통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감...